[신동호가 만난사람]“친환경 방법 쓰고도 생산비 절감할 수 있다
2012 03/06ㅣ주간경향 965호
친환경
ㆍ태국 친환경 글로벌 제지회사 더블에이 띠라윗 리타본 부회장
기업은 환경을 갉아먹고 산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유통·사용·폐기하는 전 과정이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길을 걸어가면 어쩔 수 없이 발자국이 생기는 것처럼 모든 제품은 반드시 이산화탄소라는 얼룩, 즉 탄소발자국을 남긴다. 이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다.
펄프와 종이를 생산하는 기업인 더블에이는 그 수치가 마이너스라는 믿기 어려운 주장을 펴고 있다. 태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인 이 회사는 국내에도 진출해 복사용지 시장에서 선두를 다투고 있다. 제지업은 대표적인 환경 파괴 업종에 해당한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뿐 아니라 이를 흡수하는 숲에서 원료를 취하기 때문이다.
탄소발자국 전문가인 영국 마이크 버너스리는 <거의 모든 것의 탄소발자국>에서 순수한 비재생 종이 1kg의 탄소발자국을 2.59kg이라고 추정했다. 더블에이는 kg당 -5kg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종이 1kg을 생산하면서 이산화탄소를 그 두 배 반 정도 내뿜는 게 아니라 5배나 흡수한다는 얘기다. 믿을 수 있는가. 믿는다면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지난 2월 20일 기후변화센터 고건 명예이사장과 이장무 이사장, 환경재단 최열 대표,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 등 국내 환경전문가들이 이를 현장검증(?)하는 기회를 가졌다. 태국 쁘라친부리에 있는 공장과 농장을 살펴보고 관계자의 설명을 들었다. 기자도 그들과 일정을 함께 한 뒤 띠라윗 리타본 더블에이 부회장과 방콕 그랜드 하얏트 에라완 호텔에서 따로 만났다.
쁘라친부리 공장과 농장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에는 세 가지가 있지요. 먼저 FSC(국제산림관리협의회) 인증이 있는데, 최소한의 1차적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자체 농장을 운영하는 것인데, 생태계 파괴라든가 주민 이주로 인한 공동체 해체 등의 문제를 일으킵니다. 세 번째가 더블에이 방식으로, 산림만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더블에이 방식은 우선 원료를 자연림이나 대단위로 조성한 인공림에서 얻지 않는다. 양질의 펄프를 얻을 수 있는 ‘페이퍼트리’라는 특별한 나무를 칸나(논두렁이라는 뜻)라는 유휴지에다 길러서 이용한다. 유칼립투스 수종을 개량한 이 페이퍼트리 묘목을 농민에게 싸게 분양해 3~5년 뒤에 20배 가격으로 매입한다. 자연림을 훼손하거나 농경지를 잠식하지 않으며 농민에게 부가수익의 기회까지 주는 셈이다.
물과 에너지를 재사용하는 시스템도 매력적으로 보인다. 쁘라친부리에 있는 펄프·제지공장은 외부 전력이 아니라 목재 폐기물과 흑액과 같은 페이퍼트리의 부산물에서 생성된 바이오매스로 가동한다. 바이오매스로 자체 생산한 전기는 공장을 돌리고도 남아 약 40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을 태국전력청에 되팔고 있다. 공장 용수도 공공 용수가 아니라 우기에 빗물을 저장한 ‘그린레이크’의 물을 이용한다. 각 공정에 절수 기술을 적용하고 폐수는 정화해서 재사용한다.
페이퍼트리가 펄프의 원료로 어떤 장점이 있습니까.
“저희 더블에이 페이퍼트리는 3000만개의 섬유질을 (A4용지) 한 장당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타사 제품보다 월등합니다. 종이 표면이 부드럽고, 부드럽기 때문에 잼 없이 복사가 잘 된다는 이점이 있죠.”
유칼립투스 수종이 빨리 성장하기 때문에 물과 영양분을 많이 소모하고, 그래서 주변 농작물이나 토양,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런 의구심을 해소할 만한 과학적인 자료가 있습니까.
“사실 농작물에 피해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독립기관의 자료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로는 태국의 150만 농가가 저희와 계약을 해서 35~40년 동안 칸나에서 더블에이 페이퍼트리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이게 더 좋은 증명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페이퍼트리는 자체 R&D연구소에서 5종의 유칼립투스의 장점만 추출해 조직 배양을 통해 만든 하이브리드 수종이다. 25년의 연구개발 끝에 섬유질 함량이 많고 빨리 자라며 태국 기후에 완벽하게 적응한 종을 개발했다고 한다. 띠라윗 부회장(그는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다)은 “태국 외에 방글라데시와 중국 남부에서도 더블에이 방식의 페이퍼트리를 생산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제지회사에서 더블에이 페이퍼트리를 사용하기를 원하거나 벤치마킹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다른 회사에서 이런 기술을 원하기는 하죠. 원한다면 직접 저희가 계약한 농가에 가서 나무를 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은 오랜 시간을 거쳐서 나온 것이고 400여명의 저희 나무 컨설턴트의 손을 거친 것입니다. 저희 트리테크(묘목장)에서 보셨다시피 그 정도의 규모로 묘목을 가꿀 수 있는 역량도 있어야 합니다.”
공장 용수를 재사용하고 그 물이 자연수로는 절대 흘러가지 않도록 한다고 했는데, 지난번 홍수 때 피해를 일으키기거나 문제점을 드러내지 않았습니까.
“전혀 영향이 없었습니다. 방콕에서 수해를 입은 일부 기업이 쁘라친부리 산업단지 쪽으로 이주를 하고 싶어 합니다. 홍수 피해가 없기 때문이죠.”
종이 1톤을 생산하는데 이산화탄소를 2.5톤 배출하지만 7.5톤을 흡수해 결과적으로 5톤을 감축하는 효과를 낸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화석연료를 어느 정도는 사용한다는 것입니까.
“생산량을 연간 60만톤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100% 바이오매스만으로는 힘들기 때문에 간헐적으로 석탄 연료를 사용하기는 합니다. 저희가 바이오매스만 사용할 경우와 석탄 연료를 간헐적으로 사용할 경우를 분리해서 조사를 했는데 이 정보는 다 공개적으로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올해 공장을 증설하면 석탄을 더 사용해야 되겠네요.
“저희가 100메가와트의 바이오매스를 생산하는데, 사용량은 35메가와트밖에 안 됩니다. 새 공장이 가동된다 하더라도 바이오매스로 충분히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비용과 수익만 따진다면 더블에이의 친환경 경영방식이 짐이 되지 않습니까. 일반 목재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게 더 싸게 먹힐 텐데요.
“아닙니다. 친환경 방법을 쓰고도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저희 제지공장은 모든 자원을 자체적으로 사용하고 사용된 모든 자원을 재사용하도록 특수하게 설계돼 있습니다. 만약 용수를 외부에서 뽑아 쓰거나 전기를 외부에서 가져다 쓰면 오히려 그게 더 비싸고 비효율적일 것입니다.”
이번 방문단이 특별히 관심을 가진 것은 더블에이가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방식이다. 띠라윗 부회장은 “농업 비율이 50% 정도는 돼야 공동체가 유지된다”며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쁘라친부리 지방 스리마하포트 지역의 한 농장에 수확을 앞둔 벼가 익어가고 있고 칸나에 약 2m 간격으로 키 20m 안팎, 15~25cm 굵기의 페이퍼트리가 줄지어 서 있었다. 심은 지 3년 정도 된다고 했다. 농민은 그루당 3~5바트(120~200원)에 묘목을 사서 심어 60~100바트(2400~4000원)에 팔게 된다.
페이퍼트리를 칸나가 아니라 농지에다 대규모로 심는다고 해도 묘목을 분양해줍니까.
“저희가 막을 방법은 없죠. 하지만 왜 굳이 사서 심겠습니까.”(배석한 송호섭 더블에이 인터내셔널 네트워크 코리아 대표이사가 “쌀이 수익이 높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페이퍼트리는 부수입원으로 가치가 있는 구조라는 얘기다.)
더블에이가 사회공헌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어떤 특별한 기준이 있습니까.
“나라마다 케이스가 다릅니다. 호주에서는 유방암 캠페인을 돕고 있습니다. 호주 소비자들이 그쪽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죠. 저희 브랜드가 사회공헌활동을 할 때는 그 지역의 소비자들과 연관성이 있느냐를 따집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합니까.
“태국에서는 제지공장 인근 학교에 묘목을 주고 칸나 프로그램과 비슷하게 재정 지원을 하는 활동을 합니다. 현재 100개 학교가 참여하고 있고, 더 확대할 예정입니다.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이라든가 말레이시아 내추럴소사이어티, 싱가포르 경영대학 등도 지원합니다. 젊은이에게 친환경 활동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죠.”
WWF는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원료를 공급받아 가공하는 주요 제지회사가 수마트라 열대우림을 지속적으로 파괴해왔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WWF는 그 중에서도 아시아 최대의 제지업체인 APP를 지목하고 관련 제품의 불매운동을 펴고 있다.
복사용지 시장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저로서는 긍정적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사실 복사용지 산업 자체는 좀 힘들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아시아 지역에서 소비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경쟁사의 투자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사 투자가 늘어나면 아무래도 소비자들이 가격에 예민해질 수 있죠. 저희 더블에이는 가격이 높기 때문에 그 부분은 우려가 됩니다만 친환경적인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소통시키고 더블에이가 갖고 있는 장점을 좀 더 알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더블에이가 태국 농업재벌의 자회사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순후아센 그룹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순후아센 그룹은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이고요, 쌀이나 타피오카라는 작물을 수출합니다. 더블에이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습니다.”
더블에이가 한국에서 ‘태국의 삼성’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그 이유를 압니까.
“하하하.(크게 웃음) 비교당하는 게 굉장히 즐겁군요. 아마 더블에이가 다른 사업에도 관심이 있다는 것일 텐데, 그러나 저희는 농업에 기반을 두고 농업과 관계된 사업만 하고 있습니다. 비교는 굉장히 감사합니다만 아직 삼성만큼 크지는 않을 것 같네요.”
태국의 국민기업이라고 할 정도로 브랜드 인지도가 높고 경제·사회적 비중이 커서가 아닐까요.
“사실 태국에서는 대기업에 속하긴 합니다. 하지만 삼성에 비해서는 조직 규모가 작고요, 삼성 브랜드 인지도와 견줄 만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건 좋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친환경 경영, 그리고 복사용지라는 단일 품목에 집중한 사업 목표와 철학을 갖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태국이 농업국가이고 기업 자체도 농업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그렇게 시작이 된 것 같고요. 오랜 리서치의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리서치를 통해서 다른 제지공장이 어떻게 종이를 만드는지 알 수 있습니다. 펄프와 종이를 동시에 생산해내는 일관화 공정에 관해서도 알 수가 있겠고요. 또한 섬유질을 어디서 공급을 받는지도 리서치를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저희 회사 같은 경우 지속가능한 섬유질 공급처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칸나 페이퍼트리(paper tree from Khan-Na)’라는 프로그램만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띠라윗 부회장은 태국에서 태어났지만 영국·필리핀·호주·미국 등에서 성장했다. 호주 태즈메니아대에서 교통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계 주류회사로서 발렌타인 위스키 브랜드로 유명한 얼라이드도메크 엔터프라이즈부문 지사장 등을 역임했다. 글로벌 마케팅 및 영업 전문가로서 그가 지난 25년 동안 주로 한 것은 새로운 사업 개발과 시장 개척이었다.
성공한 글로벌 비즈니스맨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비즈니스 철학이 무엇입니까.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브랜드 아이디어가 좋아야 하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인 원칙이나 가이드라인은 본사에서 전달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각 지역에 맞는 인재를 발굴해서 육성하는 것입니다.”
더블에이가 한국에 진출해 단기간에 자리를 잡은 데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한국 소비자에게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소비자는 고품질을 인지할 수 있고 저희가 전개해나가는 마케팅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특히 로열티가 굉장히 높습니다. 제가 본 나라 중에서 한국의 로열티가 가장 높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렇기 때문에 더블에이는 한국을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여깁니다.”
이 기회에 특별히 하고 싶거나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더블에이 더 사십시오.(웃음) 감사합니다.”
<태국 방콕ㅣ글·신동호 선임기자hudy@kyunghyang.com>
<사진·차보딘 소이키우>
|